[미도치아] 순간 (For.몽이)

카테고리 없음 2015. 12. 27. 00:51


 모리사와 치아키는 자주 타카미네 미도리를 부른다. 정말 자주 부른다. 농담삼아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타카미네 손은 모리사와의 것이 아니냐는 농담. 그만큼 모리사와는 미도리의 손 혹은 팔을 끌고 학교 모든 곳을 누빈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지만 그에 태클을 걸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타카미네 미도리, 끌려다니는 당사자였다.


 "…죽고싶다."


 오늘도 길을 걷다가 납치당했다. 무자비로. 타카미네는 오늘도 눈에 가득 활기를 꽉꽉 담은 선배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발각당했다. 그 결과 팔을 잡힌 채, 선배의 말을 들으며 죽고싶다를 연발하는 중이었다. 행선지도 모르고 학교 안을 올라가며 빈 교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타카미네는 회상했다. 빈 교실이라하면,


 [ 액션 그린 빔!!!!!! ]


따 위를 외쳤던 공간이 아닌가. 우울해. 타카미네에게는 오늘의 모리사와 선배는 한층 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 보였다. 이유를 묻는다면 정확히 꼬집어낼 순 없지만…그랬다. 빈 교실에 들어오고 매너좋게 문까지 닫은 치아키는 실제로도 기분이 아주 살짝 더 업된 상태였다. 언제나 UP의 상태지만 곱하기 1.5배정도 더. 그런 상태의 치아키는 허리에 양 손을 얹고 타카미네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뒤이어 자연스럽게 타카미네에게 다가섰다. 


 "타카미네."

 

'… 목소리가'


 목 소리가 달랐다. 갑작스러울 정도로 선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활기 넘치던 눈빛은 심연의 그것을 닮은 것으로 변했고 포물선을 그리던 입매는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담담히 다물려 있었다. 이런 선배를 본 적이 있었나? 라는 자신 안에 울리는 질문에 당연히 자신은 아니라고 말했다. 더구나 자신은 지금 모리사와 선배의 행동에 놀라 아무말도 못한 채 선배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 사실 "


 사실은 말이다. 덧붙이듯 나온 말은 더욱 더 나를 옥죄는 것 같았다. 가라앉은 시선을 제게 제대로 마주쳤을 때 느껴지는 것은, 어떠한 긴장감과… 망설임. 선배와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감정들. 어째서…. 입을 떼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려 했을 때 다시금 마주친 선배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선배에게 농락당한 것을 알았다. 괜히 따라 긴장한 자신이 싫었다, 우울해…



" … 하아. 선배, 진짜 저 놀리시는 게 재밌으십니까…."

" 하하하! 타카미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섭섭하지. 일종의 무대 연습이였다고 생각하자고! "


 무 대연습은 무슨. 선배는 항상 저에게만 짖궃었다. 물론, 어쩌다보니 많은 시간을 같이 있어야하는 처지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이것 저것 요구하고 있었다.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우울해하고, 무기력하다는 점은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변과 자신의 거리는 항상 일정했다. 말은 걸되,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계선의 존재. 그런데 어쩐지 모리사와 선배에겐 그런 것이 없었고 저를 당혹케 만들었다. 생각의 늪에 빠진 자신과 달리 선배는 유유히 움직여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닫힌 문을 열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이제 곧 농구부의 시간이다! 타카미네. 얼른 가…"


탁.


 열 려있던 문이 닫혔다. 아니, 자신의 손으로 닫았다. 다시 문이 닫힌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자신을 돌아본 선배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응? 왜 타카미네, 문을 도로 닫는..? 새삼 선배의 눈빛은 참 읽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선배가 한 것처럼 한 발 더 모리사와 선배에게 다가갔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닫힌 문과 자신 사이에 갇힌 선배. 선배는 슬그머니 자신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도 짐짓 표정을 굳힌 채 선배를 내려다 보았다.


 " 선배,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이렇게 있어주세요."


도 망가지 말아주세요. 덧붙이듯 말한 말과 함께 선배를 조심스레 끌어 안았다. 작게 움찔하는 선배의 몸. 선배는 생각보다 더 따스한 체온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의 체온에 대해 생각하게 될 날이 오다니. 그게, 다름아닌 선배의 것이라니. 그렇게 생각이 깊어지다 깨달았다. 선배가 미동조차 없다는 것을. 


 "… 선, 배."


 놀 라서 바로 마주한 선배의 얼굴을 보고 자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딘가 멍해져서 놀란 눈빛이 담긴 상기된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행동 또한 단순한, 아주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말 할 충동적인 행동이라고 말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선배 앞에서 자신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 아…! "


 단 발마의 외침. 선배가 정신이 드는 듯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여전히 붉은 얼굴, 갈피를 못잡는 듯 이리저리 방황하는 눈동자. 뭘 말하려는 것인지 떼었다 꾹 다물린 입. 자신은 선배를 진정시킬 생각조차 못한 채 선배의 얼굴만을,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바라보았다.


" 그, 그게 말이다. 타…카미네. 내가 좀 더위를 많이 탄다! "


 그 렇게 말하는 선배의 입에선 입김이 나왔다. 히터를 틀어놓지 않은 교실이라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왔고 선배의 손은 많이 시려보였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저는 그게… 그래, 인정하자.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 자신의 포옹 한 번에 이런 반응을 보여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변화의 순간이 있다고들 한다. 지금의 자신은 평소와 달리 이상했다.


" 선배."

" …어! 어? 할 말이 있나, 타. 타카미네?"


 다른 것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에 놀라 도망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바라봐준다. 그런 선배가 자신 앞에 있다. 자신이 이 말 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자신 앞에 있었다. 


" 다시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







[이즈츠카] 웃음 Part.2 (For.율님)

카테고리 없음 2015. 11. 1. 23:46

 


 

? 라는 물음이 당연히 떠오를 만한 대답이었다. 모델? 모델이라 함은, 나루 선배, 세나 선배, 그 예의 민폐 끼치고 있다던 유우키 선배가 했었다고 듣긴 들었는데. 애시 당초, 앞으로 있을 듀얼이나 무대 준비를 위해 시간도 모자를 텐데, 왜 갑자기 엉뚱한 모델 일을 하라는 거지?

 

? 라고 물어보겠지. 당연히 나로서도 이건 상당히 경쾌하고 재밌는 제안이라고 생각해그 제안이라는 건! 우리 Nights가 감미롭게도, 우아하게도 학교 대표로 나온다는 것! 우하하하. 기뻐하라 기사들이여~!”

 

저 말의 요약을 하자면, 모 잡지에 학교 대표로 Nights가 나오게 됐는데 그냥 문 열고 보인 두 명이 나가면 되겠다 라는 거지?

그래, 그렇게 돼서 정말 모델 촬영 일정이 잡혔다. 아니 이미 우리가 알기 전에 leader가 우리가 찍어야 할 잡지사와 계약해버렸지만. 의외로 세나 선배는 가볍게 수긍했다. 무작위적인 leader의 기행 같은 건 이미 예전에 적응한 듯 차분하게 일정과 장소를 묻는 모습에 조금 놀라버렸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자면, 이 학원에 오기 전에 했던 일이기에 별 문제가 안 되는 걸지도. 문득 생각을 이어가다 한숨이 나왔다.

 

평소라면, leader의 말에 잠깐 놀랐어도 선배가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아까 전의 그 접촉과 행동이 자꾸만 내 신경을 흩트린다. 몰래 본 선배의 뒷모습은 저와는 달리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괜히 어딘가 싱숭생숭해지는 마음 한 쪽 어딘가에 주먹을 꼭 쥐었다.

 

 

*

 

 

카사 군, 이런 일 처음이지?”

? , . 맞습니다. 그럼 세나 선배는 원래 이쪽에서 일했다고 들었는데.”

기초적인 분장과 의상을 갈아입은 후, 제게 다가온 선배에 내심 놀랐다. 그 이후부터 계속 깜짝깜짝 놀라고 마는데, 죽고 싶다.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심해진다. 대화를 해도 시선은 미묘하게 엇갈린 상태. 지금도 한 번 눈을 마주쳤지만 자연스럽게 시선이 내려간다. 제발 이런 자신을 모르길. 자기 자신도 왜 이렇게 돼버렸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럼, 기본적인 것만 알려줄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 봐. 너만 오버하는 거라니까, 스오우. 선배는 단지 이번 일에 대해도, 이전 일에도 크게 관심 가지고 있지 않아. 처음 하는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렇게 먼저 제안해주시는데. 이렇게 나 자신을 세뇌시키듯 속으로 몇 번이고 진정하려 노력했다. 진정한 듯 똑바로 선배를 쳐다보고 시작하죠.’ 라는 말을 꺼냈다.

 

그럼 먼저.”

 

나를 카메라라고 생각해. 그 말에 잠시 의문이 들었으나 말없이 끄덕였다. 평소같이, 아니 평소보다 낮고 진중한 목소리에 몸을 의식적으로 긴장시켰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축 쳐진 듯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것도 아닌 적당한 상태의 몸을, 무대 상태에서 익숙해진, 그런 상태로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세나 선배를 쳐다보았다. 잠시 선배의 눈동자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는 가 했지만, 착각인 듯 다시금 자신과 눈을 마주친다.

 

편하게 웃으면서 이쪽으로 손을 뻗어봐.”

 

손을. 아마 이건, 선배가 배웠던 과정 중 일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눈높이에 맞춰 몸을 약간 숙인 선배를 향해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손으로 부드럽게 선배의 왼쪽 뺨을 감싸 정말 편하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바라보듯 웃어보였다. 좋아하는, 가까이 있고 싶고 기분 좋은 바람의 숨결처럼 편안한. 그렇게 생각하다 어느 순간, 이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 순간, 엄청나게 표정이 흐트러질 뻔했는데 그와 동시에 내 오른쪽 손등을 잡아서 내리는 선배의 행동과 그럼, 다음.’ 이라고 말하는 음성에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뭘 그렇게 집중한 거야. 자신은 또 그렇게 무시했다. 또 시작된 가슴의 잔 떨림을.

 

두 분! 여기 계셨네요. 얼른 촬영장으로 들어오시죠. 곧 촬영 시작합니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

 

우리 잡지의 Concept는 딱딱하게 서 있는 것보단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럼, 저는 순간마다 찍을 테니 되도록 의식하지 말고 두 분이서 움직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촬영 시작할게요.”

 

의식, 이 안 될 리가 없잖습니까. 그냥 밖에 서 있어도 죽을 것 같은데.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고선 느린 몸동작으로 선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카메라가 아니라 선배를 보고 있으라고? leader에게 반항하는 일이 있더라도 도망쳤어야 했나. 복잡한 심정으로 선배를 쳐다보니 볼에 느껴지는 고통.

 

으그 믐느그! (이거 뭡니까!)”

 

 

 

선배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양 볼을 잡아당기고 있다. 찰칵. 이런 거 찍지 마시죠, 감독님? 일단 찍히든 말든 손을 뻗어 팔을 붙잡으니까 선배가 털썩 주저앉는다. 당연히 팔을 붙잡고 있던 자신도 얼떨결에 쓰러지듯 앉았다. 다만 선배 위에서 몸을 겹치듯 앞으로 쏠려 앉았다는 게 문제점이었지만. 눈이 마주치고 선배가 눈으로 웃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으득. 선배는 즐기고 있었어!

 

울컥한 마음은 이성을 날아가게 만들고, 의상으로 입었던 하얀 와이셔츠와 그 위에 맨 붉은색 넥타이를 살짝 풀어내고선 제 밑에 거의 눕기 직전 앉아있는 선배의 오른쪽 뺨을 잡고 고개를 가까이 해서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까처럼, 정말 제가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누군가를 보는 것처럼 제게 닿아주길 원하는 이의 눈빛처럼. 저가 원한 것처럼 선배의 얼굴은 무표정한 얼굴임에도 당황스러운 낯빛이었다. 제가 이렇게 이상하게 나오리라 생각하진 못했겠지. 조금 만족스러운 웃음이 입가에 걸쳐졌다.

 

놀리면 못써요.”

 

마치,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한 마디 해주자마자 촬영장에 있던 몇 몇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 더불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 지은 선배가 졌다는 듯 두 손 들었다. 먼저 몸을 일으키고선 먼지를 털어내고선, 버릇 때문에 정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자신에게 손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아 자신을 일으키는 힘을 느끼며 가볍게 일어났다.

 

 

*

 

 

카사군은 더 이상 모델 일 못할 것 같네.”

. 그렇게 제가 못했습니까?”

아니.”

그런데 왜요? 제가 저도 모르게 크게 accident라도 쳤습니까?”

 

돌아가기 위해 탄 심야의 사람이 무척 드믄 지하철에서 앉아가던 와중 들은 선배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혼란스러운 자신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또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큰 사고였습니까? 다들 끝날 때, 감독님도 Staff분들도 다 좋은 표정이었는데. ? 이런 저런 생각에 말도 못하고 있던 와중, 어깨에 기대오는 선배의 행동에 놀랐다.

 

그런 예쁜 표정은 나만 볼 거야. 안 돼.”

그게 무슨.”

하지 마. 허락 안 해. 내 거야.”

 

대꾸 하나 제대로 못하고 낯빛이 뜨거워져 고개를 푹 수그렸다. 진짜, 이 사람은부끄러운 것도 없는 겁니까?









 

[레오츠카]Kiss part.2 (for. 몽거)

카테고리 없음 2015. 10. 28. 01:04


아침이다. 츠카사는 항상 그랬듯 제시간에 기상했다. 좋은 아침 습관은 어릴때부터 몸에 베어 있었던 것이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하루 할 일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아. 어째서? 라는 단순한 물음은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는 존재를 보고나서야 해결되었다.

자신의 상의 안에 손을 넣고 다리는 내 다리 위에 걸쳐져 전체적으로 자신을 옭아매는 형상이었다. 제게 무척 불편하기 짝이 없는.

" 조금만 더 자자. "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을 좀 더 끌어안는다. 눈을 감은 상대방이 더 가까이 닿아 왔다. 이미 자신이 일어나야 할 시간이 3분이나 지나있었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는 시간은 30분 정도였고, 이대로 이 사람에게 얽어매여져 있으면 늦어버릴텐데.

시계를 확인하던 눈은 다시금 자신에게 파고들어 잠을 자고 있는 이에게 향했다. 떨쳐내야 늦지 앉을텐데.

왜인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찼다. 아침의 빛에 비춰 금타래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차분히 가라앉아있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간듯 그의 흩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해 손을 뻗다가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웃음기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뭐라 말하기도, 그렇다고 깔끔히 그 시선을 밀어낼 수도 없었다. 분명 몸으로 자신을 옭아매고 있지만 그것보단 그 시야가 더욱.

" 난 누가 날 쳐다보면 못 자는 예민한 타입이라서♩ "
2주 전, 연습실 복도 창가에서 모두의 시선을 한 번쯤 강탈하면서 잘만 자던 누군가가 기억났다.

" 그래서 우리 신입은 왜 날 보고 있었을까. "
당신이 날 붙잡고 안 놔주고 있어서라고 둘러대기엔 부족했고, 그렇다고 저도 모르게 눈이 가서라고 대답하기엔 조금, 그랬다.

그렇지만, 얼굴이 뚫릴듯한 강렬한 시선에 숨을 쉬기 힘들었다. 정작 츠카사를 힘들게 만든 레오는 겉으론 아무것도 모르는 뻔뻔한 표정으로 속으론 능구렁이가 300마리 키우는 듯한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 머리카락이, .. 서요."
" 뭐? "
" 머리카락이 예뻐서요. "

이렇게 있다가 자신을 밀치고 도망쳐도 이미 그의 반응으로 만족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는 또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 버린다. 아직도 시선조차 제대로 못맞추는 주제에, 그 말은 예나 지금이나 올곧아서 자신을 놀라게 만든다.

그래서였을까. 또 변덕 같은 진심을 내보이고 만다. 조심스레 두 손을 뻗어 얼굴을 감싸쥐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그의 아름다운 머리칼에 입맞춤 해버린다. 짧게 입을 맞추고 떼어내고선 당연히 그 귀여운 연보랏빛 눈망울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며 가볍게 말했다.

" Good morning♪ "


*


그 이후, 츠카사가 붉어진 얼굴로 울먹이는 눈빛으로 웃으며 굿모닝, leader 이라 말하는 것따윈 없고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레오를 뿌리치고 방 밖으로 달아났다.

레오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꽉 끌어안으면서 뒤집힌 그의 잠옷 덕에 츠카사의 하얀 속살을 생각하며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만져볼 걸.

그 때, 문이 열리면서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채로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나타난 츠카사. 당연하겠지만 여기에 들어오는 것이 상당한 결심이었는지 굳어있는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 언제까지 거기에 앉아계실 생각입니까? ...씻으세요. "
" 씻겨줘. "
" ! 무슨..! "
" 뻥이야♪"

기가 차다는 눈빛의 그를 보며 레오는 실실 웃었다. 원래 자신이 알고 있던 그가 돌아오고 있다.

뭔가가 달라졌나? 아니 그것은 아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것은 그의 행동이었다. 그 이상한 점집 아주머니의 말대로 같이 집에 있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등교하는 것엔 문제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큼 내게 닿으려 하고 있고, 나는 그럴때마다 몸 쪽 어딘가가 크게 울려 여유를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침만해도 자신의 머리에 닿아온 감촉. 분명 그 뿐일 뿐인데, 모든 신경이 그 쪽에 쏠릴만큼 뜨겁고 뜨거웠다.


*


" 츠카사짱. 왔네. 그럼 오늘까지 왕님이랑 잘 보낸 거야? "

수업이 끝나고 들어온 연습실에는 나루카미 선배와 세나 선배가 먼저 와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발견한 선배에 인사하기도 전에 제게 던져지는 질문에 놀라 어딘가 굳어버린 것처럼 딱딱하게 대답했다.

" ... 그럼요,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저희 집에서.. 잘, 계시다 가셨습니다. "
" 상태는 똑같은 것 같네. 역시, 그 아주머니 야매같은 거였을까? "
" 몰라. "

그래, 난 똑같아. 딱히 이상행동을 하거나 그렇지 않아. 문가에 서서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긴장을 풀며 숨을 내쉴때, 옆에서 생각치도 못한 음성이 들려왔다.

" 너무 잘 있어서~ 또 가고 싶은데♪신입 침대 너무 좋던데. "
" 에? 둘이 같이 잤어? "



당연, 까지 말한 레오의 불상스러운 입은 단박에 츠카사의 손바닥에 의해 막혔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둘도 놀랐다. 정작 자신조차 놀랐다. 가만히 짐을 내려놓던 츠카사가 눈깜짝할새에 달려 리더에게 달려들어 입을 막았다.


분명 어제같았으면 레오가 쇼를 하든 뭘 하든 상관없는듯한 태도였는데 하루 새에 뭔가가 일어난듯,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평소의 둘 사이에 뭔가가 있는 듯한.

또 문제는 가만히 입 막힌 채로 있을 레오가 아니라는 것. 츠카사는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축축하고 촉촉한 무언가에 소름이 돋아 당장 손을 치웠다.

설마 방금 그거.


하루밤사이 같이 있었다고 눈빛까지 통하는지 경악에 서린 츠카사의 눈빛을 보더니 찡긋 웃어주며 혀를 살짝 내밀어 보였다. 츠카사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 Jesus! "


*


유닛 연습 활동 내내 극과 극의 거리를 자랑하듯 떨어져 있던 둘이 수상하기는 했지만 츠카사도 평소로 돌아온 것 같고, 리더는.. 좀 더 막내에게 집착끼가 넘실되는 또라이로 변질된 것 같았다.

그로부터 몇 일 뒤엔 그것도 점차 가라앉아 정말 일상으로 돌아온 듯 했다. 일찍이 시작된 연습에 서둘러 연습실에 도착해 문을 연 사람은 츠카사. 안에 아무도 없나 고개를 둘러보다 익숙한 인영의 모습에 잠시 멈칫했으나 무리없이 다가갔다.

" leader. 일찍 오셨네요."


이젠 전의 그 무감각한 상태도 다 사라진 뒤였다. 그 상태의 자세한 사정은 레오의 말을 빌리자면, 일시적인 마음의 병같은 거로 큰 자극이 일어나면 금방 깨어나는 일종의 마음 파업(?) 정도 란다. 왜 그런게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자극을 어떻게 줄 생각을 생각을 했냐는 물음에 간단하다는 듯 " 신입이 재미없으면 싫어. " 라는 답변.

실은 저렇게 간단하게 대답해도, 유닛을 속 깊이 생각하는 리더임을 모두가 알기에 그러려니 레오의 말에 수긍했다.

창틀에 기대앉아 따스한 바람이 부는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츠카사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 손바닥에 떨어진 벚꽃잎에 웃더니 바로 츠카사에게 손을 건냈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받아낸, 그것은 아까 그가 받아낸 벚꽃잎. 연한 분홍잎이 참 예쁘다고 생각해 살포시 웃었다. 그리고 이것을 전해준 당신에게 감사하단 얘기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시야가 어둡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닿은 입술의 감촉.


따스한 바람의 탓이었을까. 따스한 감촉과 그의 체향이 너무도 가까운 걸 입맞춤이 끝나고서야 알아차렸다. 왜, 라는 짧은 질문이 가까스로 입밖으로 나왔다.


" 난 널 좋아하니까."


자신에겐 닿기 어려운 해답도 언제나 알고 있는 듯한 그의고백은 선율을 따라 흘러나왔다. 그 앞에서 자신은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아서, 두근거리는 심장이 너무나 버겨워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P.s 몽거 생일축하해♥이게생일선물처럼 돼버렸어(...)(뛰어내린다)

[레오츠카] Kiss part1 (for.몽거)

카테고리 없음 2015. 10. 27. 00:53



차츰차츰 봄이 찾아와 따사로워진 유메노사키 학원의 어느 봄날. 햇빛은 따사롭고 하늘은 청명했다. 그런 평화롭고 잔잔했던 일상. 소속 유닛 Nights의 1학년, 츠카사를 제외한 Nights 전원은 어느 순간부터 어느 '사실'을 알아챘다.

'그' 스오우 츠카사가 이상하다.
아니 겉으로는 그렇게 이상함을 느낄 단계는 아니었다. 요 몇 일새는 굉장히 순조롭다고 볼 수 있었다. 일상같은 이즈미의 유우군 스토커짓과 리더인 레오의 기행같은 4차원 짓을 제외한다면.


*

"그러니까. '신입'은 이 곡을 하고 싶다고?"

주위의 시선이 레오에게 꽂혔다. '신입'이란 호칭은 레오가 츠카사에게 아무런 흥미가 없을 적 멋대로 부른 호칭이라 츠카사가 무척 싫어했다. 지금에서야 조금씩 이름 불러줘 나은 듯 했지만 그 강조하듯 크게 말한 '신입'은 꽤 시비조로 들렸다

" 그게 하기 싫으면 다른 곡으로 하죠. "
무덤덤. 예의 그 유창한 영어도 없다. 레오를 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 눈빛에 어떤 감정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을텐데, 평소의 그 사근사근한 태도는 어디갔다는 듯 악보만을 보고있다.

나루는 왠지 얼어붙은 듯한 분위기에 눈동자만 쭉 돌려 이즈미를 쳐다보았다. 이즈미도 마침 고개를 들다 눈이 마주쳤다.

' 츠카사쨩 왜 저런 거야? 화난 거야? '
나루는 열심히 입모양으로 자신의 의사를 이즈미에게 전달했다. 그를 무심히 보던 이즈미는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그에 익숙한 나루는 계속 쳐다보았다. 마주 입모양으로 ' 말 걸지마' 라고 말한 뒤 고개를 저었다. 츠카사의 얼굴이 화나보이진 않고 어딘가 멍해보이는 구석이 마치 잠자고 막 깨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옆에서 폭풍 하품중인 쿠마군 정도는 아니었지만.

" 신입. 나한테 화난 거 있어? "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리더는 직구 스타일이었다. 츠카사가 이상해지니까 기행의 달인이었던 리더가 오히려 정상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츠카사는 그때까지도 악보만을 훑어보던 중이었고 레오의 말에서야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제가 어째서 화내죠? "
혹시 둘 싸우던 중이었던 건가? 싶을 정도로 대화 내용은 썩 다정하지 못했다. 레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와는 다른 눈빛. 차분하면서도 반짝이며 잘도 움직이던 눈동자가 없다. 자신을 보고 있지만 그 눈빛은 무기질하다. 재미없어.

" 넌 날 좋아하니까♪"
이런 미친. 아주 당연한 듯이 말하는 그들의 리더는 가히 정상은 아니었다.

*

결국 레오가 그 문제의 발언을 했음에도
' 아닌데요. ' 라고 깔끔히 답을 마친 츠카사는 손목에 찬 시계를 쓱 보더니 오늘은 이만 가보겠다면서 짐을 챙겼다.
분명 오늘 연습은 밤까지 해야할 일정이었건만 유유히 탈출하려고 하는 행색에 몇 몇은 경악했고 한 명은 졸고 문제의 한 명은 츠카사의 뒷덜미를 붙잡아 외쳤다.

" 그래! 가자! "
" 이즈미쨩. 리더가 막내 납치했는데. "
" 그런가보지. "

수업 이탈하는 두 명을 바라보던 나머지는 한숨을 쉬고선 레오의 뒤를 따라나섰다. 끌려가는 츠카사는 그마저도 반항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끌려가고 있었다.


" 평소보다 무기력해보이고, 감흥도 없는데 아픈 건 아니다. 이거야? "

끄덕. 레오가 벌건 대낮부터 츠카사를 데려온 곳은 병원도 아니고 왠... 골목길 낡은 판자를 벽에 덧붙여 간판이라고 붙여놓은 점집이었다. 리츠가 눈을 비비적대고선, 여기 폐가야? 라고 말한 것에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낡은. 그 안에선 이미 심오한 점집 분위기는 무슨. 그냥 일상적인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심지어 그 대답도 거의 리더가 하고 있고. 무슨 작태야?


" 야 가시나면상 가지고 지금 뭐하는 짓이야? "
" ...... "
" 화 안나냐? "

끄덕. 여전히 츠카사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신통방통한 지는 모르겠지만 아까의 리더와 같이 시비를 거는 모습에 어리둥절했고 그걸 모두 상관없다는 듯 무덤덤한 반응에 점집 아주머니는 쯧 혀를 찼다.

" 어이, 주황이. "
" ? "
" 얘 말도 안하더냐? "
" 하던데요. "

아까.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아까는 꼬박꼬박 말대답도 성실히 하더니 지금은 영 입이 꾹 다물려져있다. 더 유심히 츠카사를 보던 눈빛을 거두고선 이내 결심히 굳은듯 입을 열었다.

" 뭐. 귀신같은 건 아니고, 너는 이
빨강이한테 한 가지만 해주면 돼. "

한 가지?

*

' 둘이 같이 있어. 쭉. 쭈욱! '


방금까지 일어난 일을 츠카사는 숨을 한번 들이쉬듯 되짚어봤다. 누가 나를 끌고가서, 아주머니한테 데려가서. 그 다음에는.

" 그래서 난 침대에서 자면 되지? "

생각의 흐름을 끊어놓듯 누군가의 음성이 내 귓가에 파고 들었다. 그래, 저 사람이랑 같이 쭉 있으라고 그랬었다. 그래, 저 사람의 츠키나가 레오였다. 저 사람은 이미 내 침대에 앉아 콩콩 뛰고 있었다. 저건 내 침대인데. 아니..내 집인데?

요새 부쩍 사고의 한 쪽이 무뎌지는 건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무척 기분을 들쭉날쭉 했던 게 지금에 와서는 그저 나와 상관없는 무언가로 변해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기에 상관이 없었는데 왠지 저 사람은 불편하다.

" 전 다른 방에서 잘테니. "
알아서 자라, 같은 말과 행동에 레오는 침대에 있던 몸을 날려 당장에 츠카사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에 멈추지 않고 그의 몸이 반항하지 않음에도 손과 팔을 움직여 츠카사의 몸을 뒤에서부터 끌어앉았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숨이 멈췄다. 여태까지 반응없었던 츠카사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 ... 불편합니다. "
" 당연하지! 넌 내가 불편하니까 같이 있어야지♪"

이젠 말없이 팔을 떼어내서 빠른 걸음으로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문을 쾅 닫은 후 츠카사는 이질적인 느낌에 목이 타는 듯, 급하게 1층으로 내려가 거실에 나와 있는 물통의 물을 컵에 따라 마셨다. 맞는 말이었다. 내 이 상태를 고치기 위해선 그가 필요한데 왜 이렇게 목이 탈까. 저 사람은 내게 무슨 의미였지? 멈춰져버린 자신의 어딘가에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한편, 문이 쾅 닫힌 후 그 안에 있던 레오는 츠카사와는 반대로 여유로운 웃음을 얼굴에 띄운채, 가벼운 몸짓으로 츠카사의 체향이 묻어나오는 침대에 머리를 늬었다.

조금만 기다려, 츠카사. 내가 내 손으로 다 돌려놔줄게♪

[백건은찬]너를 사랑하기 위해서 (미완)

카테고리 없음 2015. 7. 6. 03:39
별이 작은 보석같이 빛을 내고 달이 환한 빛으로 세상을 감싸던 어느날 밤. 그 날도 다른 날과 그다지 다르지 않던 밤이었는데 난 왜 그날따라 잠자리에서 눈이 감기지 않았던걸까. 시계 초침소리도 근처 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도 커튼 사이로 달빛이 스며든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퉁. 갑작스런 소음에 억지로 감았던 눈이 뜨였다. 층간소음 치고는 가깝고 큰 소리. 이게 무슨 소리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그만큼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게 없었다. 귀신같은 건 믿지도 않았으니 난 이 소리의 원인을 찾고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베란다 창문을 미처 제대로 닫지 못함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곧이어 바람에 의해 커튼이 펄럭이며 가려졌던 창문 밖을 보여주었다. 생각없이 밖을 바라본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이 나는 날개였다.
내 눈이 잘못 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시야를 사로잡은 날개에서 무언가의 강한 끌림을 받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급히 움직여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자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충분히 내 뇌의 사고를 정상적으로 가동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생각치도 못한 상황을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시간이 짧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도무지 내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 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친구 녀석이 공상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날개를 달고서 28층인 내 방 베란다에서 등장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걸 나는 포기해버렸다. 녀석은 선선히 부는 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머리카락을 멋대로 내버려두고선 날 내려다보며 난간에 앉아있었다. 심지어 웃는 얼굴로. 먼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는 녀석에게 보이지 않았다. 항상 그랬지, 너는. 하지만 내가 먼저 입을 떼 너에게 묻고 싶진 않았다. 내 안의 어딘가에서 음습하는 어둡고 끈적한 무언가가 그러지 말라고 날 잡아당기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너에게 나올 한 마디를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순백의 날개와 너는 마치 내게 ' 원래,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 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늘어 놓을 것만 같았다. 내 표정이 안좋아지는 걸 발견했는지 넌 내게서 눈을 돌려 칠흑의 하늘을 응시했다. 시선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하늘을 응시하는 얼굴이 서글픈 이의 것임을 눈치챘다. 분명 웃고 있었는데 왜 내 눈에는 금방이라도 그 하얀 언굴에서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걸까. 울지 마, 라고 나 자신도 모르게 외칠 뻔한 그 순간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 소원을 들어줄게. "

가슴 어딘가 쿵 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누가 듣는다면 무슨 농담이냐며 웃었을 한 마디건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독한 농담이라면 그만두라고 화를 내고 조잡한 분장 때려치우라고 그렇게 얇은 옷으로는 금방 감기에 걸린다고. 또 내게 간호해달라고 할 생각이라면 집어치우라고 언젠가 내게 엄마의 잔소리같다던 말을 꺼내고 싶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난 이 상황에서 미쳤다고, 녀석이 정신이 이상하다고 치부하고 싶었다. 혹여라도 이게 개꿈이라면 당장이라도 깨라고 날 보채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정말 그렇게 쉽게 대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게도 말이다. 어디선가 막혀버린듯 답답한 가슴 한 구석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 넌 주은찬을 좋아해. ' 단순한 한 문장인데.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고백의 일종인데 그게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녀석을 믿게 만들고, 반대로 믿고 싶지 않게 만드는 질 나쁜 족쇄가.

[ 그거 알아? ]

녀석은 야자가 시작하기 전 저녁 시간에 평소같이 폰을 만지작거리며 뜬금없이 물어왔다. 마찬가지로 폰으로 게임을 하던 나는 게임에 집중이 안간다며 투덜대면서도 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걸 아냐니. 주어부터 서술하라고 인상을 찡그리니 그런 날 쓱 한 번 보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녀석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하나같이 정상 사고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것들이었고 처음엔 날 놀리기 위한 짖궃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화도 내봤지만 다 헛수고였다. 그럴때마다 녀석은 내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꿋꿋하게 이것들이 진실이라 주장했었다.

[ 천사는 딱 한 번, 소원을 들어준대 ]

또렷하게 울리는 너의 목소리. 그 날도 난 너의 말을 잘 듣지 않았었는데 지금 네 말로 내 머릿속을 스치는 짧은 기억에 마음이 더욱 가라앉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말이야. 주은찬. 너는 천사라는 존재고 이 한 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와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하는 거잖아. 그러면, 넌 내 소원을 들어주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건데? 한 번이라며. 둘도 아니고 오로지 한 번의 소원을 넌 이루어주고 난 뒤의 천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입도 떼지 못하고 메마른 입술만 꾹 다문채 널 바라보았다.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 앉은 너에게서 떨어질거란 공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 한 발자국 너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소원을 들어주고 난 뒤의 천사가 어떻게 되는지 듣지 않아도 지금 네 얼굴이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난 너를 붙잡고 싶었다.

[람찬건/단편] 약 (for.율님)

카테고리 없음 2014. 12. 11. 23:43

쇼파에 푹 몸을 편안하게 기대고선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네가 보인다. 가슴이 벅차다. 비록 남자인 내가 이러는 것이 조금 낯설고 어색하고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네가 좋아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사고조차 힘들어. 입가가 풀어지고 네 존재에 행복감을 느낀다. 네가 그런 날 알아주고선 손을 내게 뻗는다. 난 당연하듯 네 손에 내 손을 포갠다. 눈을 마주치고 시선을 교환한다. 이 넓은 지구에서 널 만나 이리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 눈을 감아 크게 숨을 들이 쉰다. 눈을 뜨면 말 하자. 좋아한다고. 그리고 눈을 뜨면 넌 그 자리에서 사라져있다.

어? 방금까지 내 눈 앞에 있었잖아. 어디있는 거야 가람아. 청가람. 알 수없는 불안감이 몸 내부를 서늘하게 만든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선 휴대폰을 찾는다. 연락하자. 그래, 연락.

" 주은찬. 뭐해? 밥 먹어. "

이 세상에서 가장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목소리. 떨렸던 손이 떨림을 멈춘다. 어느새 맺힌 식은 땀을 옷에 슥슥 문질러 없앤다. 서둘러 뒤로 돌아서니 부엌에 네가 국자를 들고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 사라진 게 아니라 눈을 감은 사이에 부엌으로 간 거구나. 다행이야. 네가 날 떠난 게 아니여서. 짙은 미소를 머금고 네게 걸어간다.

" 오늘 식사메뉴는 뭐야. 뭐든 네가 만든 거라면 맛있지만 말이야. "

" 당연하지. "

오늘은 카레구나.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거지? 정말 가람이는 대단해. 나도 너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 그래,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못할 게 무어가 있으랴. 네 뒷모습만 봐도 난 가슴이 두근거리며 제일 행복한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네 옆으로 다가가서 도와줄 게 있냐고 물어보려 한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어라.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었나? 너를 보니 딱히 신경쓰지도 않는 모습. 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으니 이런 모습은 익숙하다. 오직 내게만 집중하고 사랑해주는 모습에 중독될 것만 같아. 또 초인종이 울렸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잡상인인가. 어쩔 수 없이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현관이 센서에 의해 불이 켜지고 난 문 구멍으로 밖을 응시했다.

" 누구세요? "
" ..나야. 백건. "

백, 건. 백건. 아. 백건녀석. 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 얼마전만 해도 나랑 싸웠던 녀석이. 음 왜 싸웠더라. 아무렴 어때. 저 녀석이랑은 친구니까 다시 화해하러 온 거겠지. 잠금을 풀고 문을 열었다. 환한 햇빛이 내 눈을 강하게 자극했고 눈가를 찡그렸다. 당연하듯 익숙해진 빛에 다시 밖을 바라보니 거기엔 정말 오랜만인듯한 백건이 서있었다. 표정이 꽤 좋지 않아보여.

" ..음. 어. 들어 와. 카레 너도 좋아하지? 카레 먹자, 다 같이. "

둘도 사이가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지만, 먹는 거 앞에서 싸우진 않겠지. 일이 잘 풀릴 거라 생각하고선 몸을 틀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의 손에 제지당하고 말았다.

" 왜? "
" 다 같..이라니. 그리고 너 왜 얼굴이 이래? 집에 누구 같이 있어? "

얼굴이 왜 이러냐니.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매만지다 현관문 근처에 있는 거울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선 그 쪽으로 다가섰다. 그렇게 거울에 비췬 내 얼굴은. 잠시 얼굴을 확인하고선 얼른 돌아섰다. 저건 거울이 아닌 게 틀림없어. 아니라면 저 얼굴이 내 얼굴일 리가 없잖아. 그래. 애써 납득하고 아직도 현관문 너머에서 날 보는 백건에게 아까의 대답을 해주었다.


" 누구긴, 가람이지. 너도 알잖아. 내 애인 청가람. "


그 말을 끝내는 순간 난 녀석의 얼굴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녀석의 얼굴은 항상 뭔가 불만이라는 듯 피곤해보이는 인상이었다면 지금은 눈 앞에 모든 걸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 화나 있는 얼굴이었다. 그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 왠지 나는 알 것만 같아 서둘러 백건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나를 내려보며 백건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내게 소리쳤다.

" 비켜! "
" 무슨...이럴거면 나가. 나가라고! 백건. "

애써 막아보지만 녀석은 막무가내로 날 지나쳐 안 쪽으로 향했다. 안 돼. 가람일 헤치려고? 그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가람일 때리려고? 그러지 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짜증이 치밀었다. 거실까지 걸어간 녀석은 한 순간 멈추고선 날 뒤돌아보았다. 뭐야. 가람이 찾는 거 아니였어? 날 바라보는 시선이 왜인지 모르게 거슬렸다. 왜. 왜 그런 안타까운 녀석보듯 날 보는 건데. 가람인 어디있지? 가람아. 눈으로 본 부엌은 아무도 없었다. 건이가 와서 숨은 거야?

" 가람..아. 가람아! 어디 있어! 나와! "
" 청가람 없어. "

핏발이 선 눈길로 녀석을 째려보았다. 뭐라고?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거야. 방금까지 나와 같이 식사를 하려했던 청가람이 왜 없어.

" 닥쳐. "
" 시발, 주은찬 너 진짜 미쳐버린 거야? 제정신이야? 청가람이 눈에 보이기라도 해? 지랄하지 마! 청가람은 한 달전에 죽었어! 죽었다고!! "
" 닥치라고!!! "

나한테 지옥같은 현실을 알려주는 그 악마같은 입 닥쳐. 꺼져. 죽어버려. 나한테서 청가람을 앗아가지 마.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그에 녀석은 더 화가난듯 욕지거릴 내뱉었고 나는 덜덜 떨리는 손과 불안한 머릿속에 미칠 것 같았다. 이럴땐 어떻게 했지. 가람일 만나려면 어떻게 했더라. 손으로 머릴 쥐어뜯었다. 하아. 하아. 하아. 내 상태를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날 보지 않고 다른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그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하. 하아. 뭐지? 뭐야?

" 하하..하. 내가 그랬잖아. 저 청가람 개새끼가 주은찬을 망칠 거라고. 내가 귀에 박히도록 경고 했잖아. 주은찬. 이 빌어쳐먹을 녀석아."

무얼 집어들더니 정말 미친사람처럼 웃는다. 그리고 나직한 욕설섞인 한 마디. 몸을 틀은 녀석의 손에 들린 저건. 저거다. 저거야! 저거면 가람일 볼 수 있어.

" 건아. 그거 줘. 얼른. "
" ....이게 뭔데? "
" 가람이를 볼 수 있는 약이지. 줘. 당장. 안 주면 너라도 죽여버릴 거야. 장난하지 말고 줘. "

진심이야. 내가 미쳐버리기 전에 줘. 얼른 그 약을 먹고 당장 가람이에게 달려갈 거야. 그게 당연한 거야. 내가 비틀거리며 다가가자 녀석은 약병의 설명란을 가리키며 내게 이를 갈듯 격양된 목소리로 또박또박 내게 이른다.


" 이 영어 보이냐 주은찬? LSD. 이 세글자가 뭔지는 알아? 아냐고! "
"..... "
"시발. 알기는 아는구나. 주은찬. 아니 이젠 마약 중독자라고 해야하나? 환각제따위로 너의 그 청가람이 채워지든? 네 망상만으로 행복했었냐고 묻잖아. 이 병신...새끼야"


녀석의 그 화난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그 녀석의 얼굴이 일렁이듯 일그러진다. 뚝. 뚝. 볼을 지나쳐 차가운 무언가가 턱을 따라 떨어진다. 그걸 눈치챘을땐 난 녀석의 품에 안겨있었다. 아. 아아. 목에서부터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울음이 숨마저 멎도록 만들고 있었다. 난 녀석을 팔을 꽉 부여잡곤 죽을 것 같이 울음을 토해냈다. 녀석은 아무 말없이 날 끌어안고 가만히 있어주었다.

실은, 실은 네 말대로 저런 마약으로도 가람이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어. 이 그리움이 매워지질 않아서 정말 미쳐서 죽어버리고 싶었어. 하지만 가람이가 웃어주잖아.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얼굴로 내게 웃어주잖아. 그건, 그건 있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에겐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었거든. 사실 그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지라도 말이야.






[백건은찬/조각글] 호빵

카테고리 없음 2014. 12. 10. 20:14
사지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다지 아픔을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신호였겠지만 그런 신호는 이제 내게 아무 상관이 없어져버렸다. 일어설 힘도 없어서 맨바닥에 볼품없게 쓰러져있는 내 시야에 짙게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이 참 하얗다. 하얘. 죽음의 문턱이 코앞인데도 난 왜 이렇게 느긋한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일까.

쿨럭.

탁한 기침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았기에 고개를 그 쪽으로 돌렸다. 아. 머리도 상처를 입었구나. 온 몸이 아픔에 절어서 머리가 다친건지 아닌지도 구분하기가 힘들었지만 고개를 돌리자 내 시야를 뒤덮는 붉은 빛. 뜨거운 피가 눈두덩이에 흘러내린 것이었다. 하하. 시야를 또렷하게 하고자 들어올린 힘 없는 손도 이미 피에 절어있어서 닦을 수 없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 빽건. "
" 형님 아프다. 말 걸지마라. "
" 엄살은.."

두 눈을 몇 번 깜빡이자 그제야 트인 시야에 보이는 것은 나와 같이 수많은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는 녀석의 모습. 금강불괴라는 괴물같은 능력은 어디다 팔아먹었냐고 말해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리 강했던 녀석이 왜 저기에 저렇게 놔 뒹굴고 있는거야. 속상했다. 내가 이리 처참하게 당한 것보다 더 마음을 안좋게 만들었다. 농담할 힘은 남아있는지 내 부름에 덤덤하게 대답한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도 고개를 살짝 틀어서 날 마주보았다. 얼핏보면 무서운 짐승의 매서움을 가졌던 노랑색 눈동자가 날 보고 있었다. 착각일진 모르겠지만, 아주 약간의 슬픔을 담고선.


" 야, 주은찬. 나 서러워서 어떻게 하냐. 죽기 전에 보게 되는 사람이 너라서. 못생긴 얼굴만 보다 죽게 된다니, 서러워 죽겠다. "

" ....누구는. "

" 너랑 나랑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미인박명 모르냐. 일찍 뒈진다잖아. "

역시 재수 없어. 자기 잘난척이 유언이냐? 사람이 뭐 이래. 미인?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가. 웃겨서, 원. 뭘 죽어. 넌 안 죽어. 비릿한 피에 젖은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저렇게 재수없는 놈은 죽을 운명이 아니다. 그래야만 한다.


" 빽건. 그거 알아? "
" 왜. 뭐. "


아픈듯 눈가를 찡그리는 녀석에게 거칠어지는 숨을 애써 고르게 쉬며 피맛이 나는 입술을 열었다.


" 내가 어릴때 점을 봤는데. 그 점이...하..그래. 그 점이 내가 노랑색 눈을 가진 흰색의 호랑이랑 끝까지 달라붙어 있을 상이라고 했어  전생도. 이번 생도. 다음 생도. 그래서 ...하아. 그래서 이런거야. 내가 너 징그럽게 따라붙을 거야. 그런 것도 "


몰랐지?


털썩. 얼마전까지도 비명이 가득차고 혈향이 코를 질식시킬 것 같던 이 곳 중앙엔 몇 구의 시체들 그리고 숨이 붙어있던 두 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중 인상적인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졌던 소년 한 명은 이내 버릇처럼 들어올렸던 손을 부질없이 떨어트리며 생을 마감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도착한 구조대는 그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의 손을 마주잡은 채 같이 숨을 거둔 또 다른 소년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었다. 이상하게도 그 아비규환인 곳에서 죽었으리라 확신한 둘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어려있어 더욱 더 의문으로 남았다.


×


" 인사해야지. 건아. "

아, 귀찮아. 한참 신나게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있었던 백건(만 5살)은 어머니가 방문을 두들기시곤 나오라는 말에 작게 귀찮음을 느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은 거부해선 안되는 것 중 하나이므로 투덜대면서도 의자에서 내려와 종종걸음으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 안녕. 건이라고 했니? 은찬아. 형이야~ 인사하자. "

전생과는 달리 붉은색이 아닌 부드러울 것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주은찬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참새 옷을 입고 와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날 본다. 그리고선 그 눈매를 순하게 접고선 사르르 웃는다.

" 안냐세요~ 쭈은짠! 임니다아! "

배꼽에 손을 얹고 꾸벅 인사하는 모양새에 풉 웃음이 튀어나왔다. 쭈은짠이래. 쭈은짠. 어머니께선 주은찬과 나 둘이서 놀라며 내 방에 집으넣으셨고 난 고사리같은 녀석의 손을 잡고 침대에 앉혔다. 그러자 고물고물한 시선으로 천천히 날 바라보며 또 웃는다.

" 넌 무슨 웃는 저주에 걸렸냐. "

이전도 지금도 이 녀석은 쓸데없이 잘 웃는다. 잠시 이 녀석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 하얗고 포동한 볼살을 만졌다. 따끈따끈. 호빵같다. 가게에서 파는 호빵.

" 껀...아?"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내 이름을 불렀다. 이 아무것도 모를 녀석이 그때처럼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녀석은 자기가 불러놓고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주은찬은 자기가 나에게 끈떡지게 따라붙는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바보라서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난 녀석에게 다가가 그 작은 몸을 살짝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 넌 내가 놔주지 않는 거야. 이 바보는 그런 것도 모르냐. 호빵이 돼서 다시 돌아온 주제에. 진짜.."

이번에는 절대 그리 널 무력하게 놓아주지 않을 거야. 절대로.







[가람은찬] 포기할 수 없었던 것들 - a (For. 한음님)

카테고리 없음 2014. 11. 14. 17:36

주은찬. 누군가가 정막한 그 순간을 깨트리듯 힘없이 던진 작은 한 마디. 정작 이름을 불렀건만 정말 그 사람을 향한 말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그에게 소리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가 자신이 알던 이였는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의 손에는 시체가 들려있었다. 빛보단 어둠이 더욱 짙게 내린 밤이었지만 크게 들썩였던 몸과 힘이 빠진듯 쳐진 모양새. 그리고 그의 손에 쥐여진 칼. 그것도 어둠속에서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피를 머금은 상태였다. 살인. 그가 살인을 했다. 그가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그가 돌아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가 무서웠다. 그가 돌아본 후 자신에게 달려들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공포감이 아니라 저 살인자가 그가 아닐거라는 자신의 얄팍한 희망이 깨진다는 것의 공포.

차라리 내가 여기서 등을 돌려 도망치는 게 나을텐데. 왜 내 발은 내 머리를 따라주지 않는 것인지. 그런 생각과 달리 내 마음 속 어딘가 그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국 숨이 막히는 정막감 속에 그 살인자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였다. 달빛에 어린 하이얀 얼굴에 음영이 진 진붉은 핏방울을 떨어트리며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이 나를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그였다. 내 얼굴을 확인하듯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피를 뚝, 뚝 떨어트리는 괴기스러운 상태로 입매를 끌어올리며 내게 말을 건넸다.

" 보지 마. 그런 시선으로 날 보지 마. "

변명도 분노도 아닌 그의 음성은 슬픔이었다. 난 그에게 다가갈 생각이었다. 다가가서 돌아가자고, 아무 일도 없었으니 돌아가자고. 피에 절은 칼을 뺏고 그 따뜻했을 손을 맞잡은 후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골목 너머로 들려오는 행인들의 음성. 내가 들었듯 그도 그 음성에 흠칫 놀라더니 시체를 들고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 주은찬! "

사라지려는 그를 따라가려 소리쳤을때, 난 주은찬에만 정신이 팔려 내 뒤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누군가가 내 입을 손수건으로 틀어막고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흐려진 시야에는 이미 그는 사라져버렸다. 빌어먹을. 그렇게 반항할 기회도 없이 나는 깊은 암전으로 빠져들었다.





" 그럴리는 없겠지만, 너희 사신 후계자들은 인간을 해치면 안 돼. "

황순 할머니가 우리 사신 후계자들을 갑작스레 불렀던 날이 있었다. 본래 이런 일은 흔치 않았기에 모두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래. 그, 주은찬도 사신 후계자였다. 주작으로서 사신강림을 해 하늘로 올라가는 임무를 수행하던. 내가 보기엔 자신의 소명도 역할도 책임도 가지고 있었던 녀석이었다. 꽤 심성도 강하고 남에게 친절한 성정의 소유자였다고 믿어왔다.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믿음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모인 장소에서 꺼낸 말은 꽤 쌩뚱맞은 것이었다. 여기 후계자들 중 미친개처럼 날뛰고 싸움을 좋아하는 녀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턱대고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었다.

" 그럼 누가 때려도 가만히 맞고만 있으란 소리? "
우리가 샌드백도 아니고, 작게 중얼거리며 인상을 쓰는 백건녀석에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 그런 게 아니야. 내가 말하는 건, 죽음. 일반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야. "

한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죽음? 할머니는 지금 우리 중 누군가가 살인을 할 거라고 예감하듯 진지한 표정이었고 그때 조금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우리가 자기 힘 조절 하나 못하고 사고를 저지르는 애새끼취급을 당한 것이었으니까. 이런 취급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반박하려 말을 꺼내기 전에 툭 던져진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아주 평온했다고 난 기억한다.

" 전에는 살인을 했던 후계자가 있었나요? "

주은찬이 전혀 호기심 어리지 않은 음색으로 말을 꺼내니 할머니는 한번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시선을 주은찬에게로 주었다. 나도 따라서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떤 심중으로 할머니께 그런 말을 꺼낸거야? 아무것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질문이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살인자가 된 후계자를 알고 있었고, 그 후계를 당신을 기억하냐고 묻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 내 시선을 알아챈건지 잠깐 그가 할머니께 주던 시선을 내게 돌리며 아주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곧 그 시선을 거두고 할머니를 바라보았지만.

" 그래. 있었지. 너무 많이 인간을 죽여 후계자의 직위를 파하게 된 후계자가. "

" 있었어? 난 처음 듣는데. "

할아버지께도 듣지 못했던 일. 백건녀석은 그런 사람이 있었냐는 듯 중얼거렸고, 현우녀석은 '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 하나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 파할 만 합니다. ' 라고 당당하게 내뱉었다. 그리고 주은찬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백건녀석이 주은찬의 팔을 치고 ' 뭐해? '라고 묻고 나서야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 새가, 지나가서. 아주 붉은 새가. " 









[가람은찬] 사랑했던, 사랑하는(for. 파이)

카테고리 없음 2014. 11. 9. 22:16

누군가가 옮긴 불씨에 의해 높게 쌓아둔 나무목재에 큰 불이 타올랐다. 큰 불이 활활 타오르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난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곳에 앉아 그 자리에서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불씨를 흩뿌리는 불덩이를 응시했다. 잠시 그 형상을 보니 생각나는 한 사람.

' 가람아. '
' ... 뭘 뚫어져라 쳐다봐? '
' 그냥. '

꽤 오래전, 내 곁에 있었던 사람. 턱을 괴고있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불덩이 쪽으로 다가갔다. 타인을 그리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관심이 없는 자신이라 그 사람에 대해 이제서야 생각이 난 것에 의아함은 없었다. 다만, 자신은 생각보다 이 사람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했던 습관, 자주 보였던 몸짓, 항상 기분 좋다는 듯 웃고 있었던 입가.

하나가 생각나자 머릿속에서 막았던 둑이 열리듯 많은 기억들이 꼬리를 잡듯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불덩이와는 거리를 좀 둔채 아까보다는 가깝지만 모여있는 사람들과는 떨어진 상태에 멈춰섰다. 눈에는 좀 더 확연하게 보이는 불꽃의 향연. 뜨거울 것 같아.

아, 그 사람의 머리카락도 저리 뜨거운 것이었나?

귀가 시려울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매섭게 느껴지던 이런 날, 나는 고작 저 휘몰아치듯 불타오르는 불덩이를 보고 왜 너를 기억해낸 것일까. 하아. 입에서 나온 하얀 입김이 칠흙같던 어둠 아래서 힘없이 흩어졌다.

" 보고싶다. "

이별이라는 것을 오랜시간이 지나버린 이 순간에서야 실감하게 돼버리는 나는 정말 어딘가 둔한 사람인 게 틀림없다. 그래서 넌 나를 떠났던 걸까? 주은찬. 아니, 사랑했던 사람아.


×


" 야. 축제인데! 또 집에 쳐박혀 있냐? 안 나오면, 알지? "

킬킬거리는 음성이 한 순간 뚝 끊기고 마침 집 문을 따고 들어가려던 이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정말 나가지 않는다면 다음날 더  시끄럽게 굴 친구녀석들이 생각나 방금 올라왔던 계단쪽으로 몸을 틀었다.

저기구나. 대학에서 매년마다 열리는 축제는 항상 화려하게 치뤄졌고 올해도 작년의 규모 이상으로 진행되었다. 이 야심한 밤에 이벤트가 진행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친구녀석을 상기하곤 다시 연락할까 생각했지만 대학로 반대편 쪽으로 돌아본 순간 그 생각을 멈추었다. 높이도 치솟아 오르는 불길은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고 난 조금 걸음을 빨리했다.

" 춥다. "

추워.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이런 겨울은 질색이었다. 걸음을 빨리한 것은 저 불길 근처라면 이 추위도 한풀 꺽이지 않을까에 대한 희망. 그렇게 생각하며 근처에 다다랐을때 난 얼굴 표면에 느껴지는 시린 감촉에 작게 놀랐다.
" 눈이다. "

자연스레 나오는 하얀 입김의 색과 꼭 닮은 송이송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푸슬푸슬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추운 건 싫지만 눈은 좋았다. 이상한 말이었지만 눈은 좋았다. 세상을 하얗게 만드는 눈송이들이 흩날리던 그 속에서 저를 돌아보던 사람이 있었다. 눈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었는데 막상 그 속에 서있던 그 사람을 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지. 눈과 너무나 어울리던 이여서. 손을 들어 내 손에 내려앉아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눈 속에 서있던 그 사람을 봤던 그 순간 깨달았던 또 다른 한가지. 당신도 이 눈송이들처럼 아주 쉽게 녹아버리겠지?

캠프파이어에 흰 눈송이들은 무슨 아이러니인 것일까. 눈이 내렸어도 불길은 아직 치솟고 있었다. 애처로워. 눈과 불은 만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데. 둘은 어째서 저리도 겁없이 휘몰아치듯 만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다면 내가 엄청난 겁쟁이라서 널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가람아.

그런 내가 답답했던 걸까. 그래서 내 등을 누군가 밀어준 것일까. 어째서 내 눈에 가람이 네가 보이는 것일까. 놀란 눈길로 날 보는 눈빛이 너무도 심장을 울려서 나는 제자리에 멈춰섰다. 넌 서로를 떠났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게 아니었어. 내가 널 떠나버린거야. 난 지독한 이기주의자니까. 널 내 손으로 녹여버리기 싫으니까. 만약 정말 우연처럼이라도 널 만나게 된다면 생각해둔 말들이 많았는데 입은 떨어지지가 않았다. 널 시야에 담은 내 눈은 너만을 향해 있었다. 네가 내게 걸어온다.

" 주은찬. "

네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르며 날 곧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네가 보였다. 눈이 더 세게 흩날렸다. 눈 속의 넌 오래전 그 모습처럼 지독히 눈과 어울렸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내 손은 네 볼을 감싸고 너의 차가운 온도를 느낀다. 넌 아무 말없이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리슬쩍 웃음이 나왔다. 난 정말 바보구나. 가람이는 그렇게 쉽게 녹아없어져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었는데. 볼에서 손을 뗀 뒤 살짝 쉰 듯한 목을 가다듬었다.

" 오랜만이야. "
" 응. "

작게 끄덕이는 모습. 진홍색 눈빛이 아직도 불타고 있는 불에 의해 일렁인다. 이 눈동자를 보지 않고서 살아가려고 했던 자신은 얼마나 멍청했던 걸까. 작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 보고싶었어. "

이제서야 마주보게 된 사랑하는 사람아.
















[가람찬] 별자리 (for. 가을님)

카테고리 없음 2014. 11. 5. 00:19

은찬은 건조하고 바람 흩날리는 가을의 어떤 날을 기준으로 시작해 오밤중에 밖에 나가 처마 밑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다들 은찬의 그런 행동에 의문을 품었지만 굳이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중앙은 현우가 말하는 속세의 도시와는 거리가 먼 시골이라 공기가 맑고 별도 밤하늘을 수놓을정도로 많이 보였다. 한 번쯤 시야를 사로잡을정도로 아득하고 별들로 인해 감탄을 자아내는 그런 밤하늘이었다.

" 뭐가 재밌다고 여기서 매일 이러고 있어? "

그 날도 밤하늘은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지. 가람은 백건과 자신의 잠버릇에 관해 시비가 걸려 또 요란스럽게 싸웠고 결국 밖에 나앉게 된건 자신쪽이었다. 이를 갈며 내일 저놈 밥에 독을 타야겠다고 부글거리며 방에서 나와 은찬과 현우의 방을 향하던 가람이 멈춰선 것은 소리도 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던 은찬 때문이었다.

자신은 매일 일찍 잠에 들기에 현우가 ' 주작공자, 요새 잠도 안자고 밖에나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데요. 말로만 듣던 불면증입니까? 예민한 청춘인가요? ' 란 헛소리를 듣고서야 주은찬이 요새 잠을 안자나, 싶었지 이렇게 깊은 밤중에 마주하게 되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끼익 거리는 바닥 소리와 함께 저를 돌아보는 얼굴. 환한 달빛만이 이 공간을 빛내고 있었다.

" 여기에선 별이 잘 보이잖아? 별을 보려고. "

별? 가람은 참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다시 하늘을 향하는 은찬의 시선에 따라 쳐다본 밤하늘. 처음 든 생각은 빛나는 게 더럽게 많네였다. 정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곳의 밤도 이리 빛났던가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 넌 몇 월 몇 일에 태어났어? "
" 그건 왜? "
" 널 찾을 방법이거든. "

자신을 찾을 방법? 가람은 그리 말하고선 어서 말해보라는 듯 저를 빤히 바라보는 은찬의 시선에 당황했다. 원래 이렇게 집요한 녀석이었나? 떠듬거리며 말해준 생일에 은찬은 좋았어! 기다려봐, 라며 자신의 폰을 두들겼고 가람은 왠지 자신의 신상정보가 털리는 찝찝한 기분에 입맛이 썼다.

" 양자리네. 지금쯤이면, 볼 수 있겠다. "
" 양자리? 설마 계집애들처럼 별자리 이런거 따지려는 거야..?"
" 응, 맞는데? "

뭘 맞는데야, 맞는데는. 가람은 이녀석 참 시덥지 않을걸로 밤을 새다니 참 시간낭비도 낭비라며 작게 혀를 찼다. 은찬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 폰을 더 만지작거리다가 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람은 또 무슨 말을 하나 지켜보았고. 그러다 아 하는 작은 감탄사. 자신을 돌아보는 눈동자가 밤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했다.

" 왜 그렇게 쳐다.. "
" 저기, 저기 네모상자 보여? 별로 이어진! "

다짜고짜 밤하늘 한 쪽을 가리켜 자신에게 보이냐고 묻는 은찬에 어이없어 하면서 바라본 그곳 처음에는 무슨 네모, 까지 생각하다가 한 순간에 들어온 별들로 이어진 네모상자. 발견한 자신이 대견한 듯 맞다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녀석을 째려보았다. 마치 지능이 떨어지는 자식새끼를 두고 잘했다고 호들갑떠는 부모마냥 구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평소같았으면 아아, 잘못했어 라고 실실 웃음을 지을 녀석이 밝은 보름달의 빛을 너무 오래 받았는지 하는 태도가 달랐다. 뭐가 달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그냥, 달랐다고 그 날 자신은 그렇게 느꼈다. 다음날 평소와 같이 천연덕스럽게 구는 주은찬을 보고 자신이 잠시 착각했었다고 치부해버렸지만. 그래도, 그 당시 자신은 왠지 신나보이는 녀석을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 저기서 옆으로..옆으로 이어져 있는 별들이 양의 뿔이야. 그리고 저 밑으로..'






" 주은찬!! 너!! "

격양된 목소리로 가람은 주은찬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여차하면 열린 청룡문을 넘은 발을 도로 나와서 주은찬에게 달려갈듯한 기세였다. 은찬은 그런 가람에게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 잘 가. 가람아. "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왜 주은찬은 하늘로 가질 못하는 건데? 저기 바보같이 서서 왜 날 쳐다보기만 하는건데. 가람은 애가 타서 미칠것 같다는걸 생전 처음 느꼈다. 하지만 자신도 깨닫고 말았다. 녀석은 끝내 사신강림을 성공하지 못했던 거라고. 정말 빌어먹게도 녀석의 무기력한 태도가 자신에게 사신의 연도 이제 이걸로 끝이라고 말해주고 있기까지. 자신은 청룡문이 완전히 닫힐때까지 주은찬을 핏발선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을뿐 마주 안녕을 고하지 못했다. 자신만은 이 연을, 주은찬이라는 녀석을 놓을 수 없었기에.




" 비가 내리네. "

은찬은 중앙에서 나가기로 할머니께 의사를 말했다. 할머니는 잠시 침묵하시더니 승낙하셨고 자신은 이제 내일이면 이 중앙을 떠난다. 사실은 이제와서 사신 후계자로서의 책임, 의무, 질서같은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다른사람들이 들으면 네가 제정신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젠 자신이 올 수 있는 한계까지 와버렸고 그 한계엔 모두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자신은 없었다. 그래, 그 애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자격은 자신에게 없었다.

아무도 없는 여기에 있을 자신이 제겐 없었다. 할머니처럼 여기의 모든 것을 추억으로 그 추억이 깃든 곳으로 보고서 멀쩡하게 버틸 자신이 없었다. 비참하다. 은찬은 끝내 그 네글자를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잠시후 은찬은 문을 열고 나가서 비가 내리는 밖을 보았다.


보고싶다.


비에 가려 먹구름에 가려 별이 안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그 애의 별자리는 양자리였더랬지. 철퍽. 젖는 것도 신경쓰지않고 비에 질퍽해진 진흙을 밟아섰다. 눈가에 맞은 비가흘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산을 가져오면 잘 보이지 않을까. 잠시 그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툴툴대던 그 애가 보고싶으면, 그 애가 날 떠나고나서 그 애가 정말 보고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자신은 몇날 몇일을 뜬눈으로 지새었지. 그리고 찾아낸 방법이, 아주 어린애같은 방법이었다. 그 애는 하늘에 있을테니 저 하늘에 있는 그 애의 별자리를 찾으면 그 애에 대한 그리움이 한절 꺾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연이 끊어진 사람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에 자신은 기뻐했지. 비록 그 기쁨이 사실 인어공주의 소망처럼 한순간 물거품이 될 것을 알고있었지만 모르는 척 했더랬지.

" 가람아. "

이제 너와 나 사이의 연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 밤은, 널 보고싶었는데. 여전히 세차게 내리던 비 한 방울이 은찬의 눈가에 닿아 흘러내렸다.